Outsider's Dev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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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카오스 멍키

카오스 멍키

카오스 멍키 - 8점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문수민 옮김
비즈페이퍼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무슨 내용의 책인지 잘 몰랐었다. 꽤 많이 나오는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방법 같은 정도로 느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카오스 엔지니어링에 관심을 가져서 그런지 "카오스 멍키"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실리콘밸리의 어느 현인은 말했다. 내 아이디어에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다면 남이 도용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남들에게 먹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얘기인 것은 맞는데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방법 같은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저자가 스타트업을 만들고 팔고 일하면서 겪은 실리콘밸리의 생태계를 거의 감추는 것 없이 얘기해주고 있다. 번역서라 애매하지만, 저자의 입(사실상은 글)이 상당히 거칠게 느껴져서 싫은 사람이나 이상한 거는 욕에 가깝게 표현해서(저자가 남성이라 사실상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여성에 관한 생각이나 섹스에 관한 얘기가 저급하게 나오는 부분이 있어서 읽을 때 좀 불편하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는 못 알았던 내용에 꽤 재밌게 읽었다.

내용을 말하면 스포일러인가 싶기는 하지만 목차만 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스포일러로 책이 재미없어질 것 같진 않아서 좀 더 자세히 적어보면...(그래도 스타트업의 성공/실패 여부 등의 흥미진진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후는 안 읽어 보는 게 좋을 수 있다.)

그레이엄은 스타트업이라는 복음의 선지자, 아니 메시아다. 그리고 마크 앤드리슨 같은 인물을 제외하면 IT 종사자 중 유일하게 구토를 유발하지 않는 글솜씨를 지닌 인물이다. 그의 명료한 에세이는 에고나 잘난 척에 절어 있지 않으며, IT업계의 매뉴얼이나 마찬가지다. 철학과 형식논리학을 공부한 만큼, 긴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며 자금모집, 채용, 현금흐름, 제품개발에 관해 소상히 설파하는 그의 논고는 소크라테스의 논법을 연상케 한다.

저자가 애드그로크라는 광고 관련 스타트업을 만드는 과정부터가 시작이다. 마케터가 아니라 광고 시장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개발자로서 연동하면서 가지는 관심 정도는 있어서 당시의 구글 중심의 광고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찾아내어 스타트업을 만들게 된다. 저자가 광고 쪽 일을 계속해서 IT에서 마케터로 광고 시스템을 많이 만져본 사람도 그 흐름을 같이 볼 수 있어서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만든 애드크로크가 Y 콤비네이터에서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Y 콤비네이터와 스타트업의 관계 그리고 투자자와 스타트업의 관계들이 도움 받은 부분, 싫은 부분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이후 애드그로크를 트위터에 매각하면서 저자가 고민하면서 매각에 대해 투자자와 사들이려는 회사 가운데 저울질하는 내용은 계속 실리콘밸리 쪽에서 일을 해야 할 텐데 이렇게 실명으로 다 언급해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읽는 처지로서는 매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재밌었고 특히 국내에서는 이런 얘기는 못 들어볼 것 같은데 스타트업을 구매하는 쪽에서 이왕이면 같은 돈으로 자기네 직원으로 들어올 사람이 더 많이 챙길 수 있게 신경 쓰지 그 스타트업의 투자자가 더 많이 받게 하지 않는 행위들은 꽤 흥미로웠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이다.

저커버그와 광고부의 회의는 언제나 미리 씹어서 떠먹여 주는 식사 같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광고부는 당시 저커버그가 신경 쓰던 부서가 아니었고, 그는 광고 관련 회의에 그저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광고부의 행동강령은 단순했다. 더 많은 돈을 벌되, 그 과정에서 사용자를 열받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애드그로크는 트위터에 팔고 정작 저자는 페이스북으로 입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페이스북의 얘기로 흘러간다. 좀 더 정확히는 페이스북의 광고플랫폼을 만드는 얘기에 가깝고 이때는 페이스북이 10억 회원이나 있었지만, 광고 플랫폼은 정말 형편없던 시절이다. 나는 트위터를 좋아하는 편이고 과거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경쟁상대로 언급될 때만 해도 트위터가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기에 페이스북의 엄청난 성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페이스북은 엄청난 속도로, 엄청나게 똑똑해졌다.

실리콘밸리의 여러 대기업은 본디 엔지니어링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페이스북은 그런 풍조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페이스북을 이끄는 것은 엔지니어이며, 코드를 만들어내는 한, 그리고 회사 기물을 (지나치게 자주) 부수지 않는 한, 귀중한 존재로 대접받는다. 파괴적인 해커의 혼은 모든 회사 강령의 지침이 되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페이스북의 광고플랫폼을 이용해 보면서(그때는 이미 다 완성된 뒤) 너무 잘 만들어서 깜짝 놀랐고 그때부터 페이스북이 돈을 어디서 만들도 그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내가 본 광고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 사내에서 정치하고 여러 시스템을 시도하고 고민하고 싸운 과정이 담겨 있어서 흥미로웠다. 내가 본 그 시스템이 어느 시스템인지도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고..

광고차단은 절도와 같다. 최소한 톨게이트에서 돈을 내지 않고 그냥 달려가는 것과 같다. 그리고 광고를 보는 대신 차라리 페이스북에 돈을 내겠다는 말은 접어두길 바란다. 사용료를 얼마로 매겨야 할지조차 불분명하니까. 광고경매와 여러분의 시선을 끌기 위한 역동적인 시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 금액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구글 클릭의 가치는 거대하고 값비싸다(그래서 구글은 돈을 찍어내듯 번다). 그들에게 있어 뷰의 가치는 0에 가깝다. 반면 페이스북은 뷰의 가치를 숭배한다. 페이스북은 여러분의 의도에 관한 실질적인 데이터가 없으므로(즉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르므로), 욕망을 이용하기보다는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페이스북의 회계에서는 뷰가 실제로 중요하며, 피드에 넣어 보내는 이미지(곧 동영상이 추가될 것이다)에 대한 공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비록 그것을 클릭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CAC는 고객유치비용(customer acquisition cost)을 의미하며, LTV는 생애가치(lifetime value)를 말한다. 전자는 사용자가 앱을 다운받아 로그인하도록 만드는 데 소요되는 마케팅 비용이다. 후자는 특정 사용자가 그 앱을 사용하는 기간 동안 발생하는 수익이다. LTV 대 CAC의 비율이 1보다 높을 경우, 앱 퍼블리셔로서 성공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저자가 월가에도 있었고 광고업계에만 계속 있던 사람이라 광고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각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저자가 보는 광고 시스템에 관한 생각이나 다른 접근이 왜 형편없는지에 대한 생각들도 계속 나온다. 물론 이런 내용이 책의 중심이 아니므로 자세하지는 않지만 나도 약간은 관심 있는 부분이라 지금은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상황에 대한 예상이나 가정을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페이스북을 퇴사하고 페이스북이 실제로 광고 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현재의 시스템이 무엇이고 왜 성공했는지 본인의 생각도 정리되어 있다.

모든 잡스에게는 각자의 워즈니악이 있는 법이다.

책을 느리게 보는 편이라 읽는 데 오래 걸렸고 책도 좀 두껍지만 적나라한 실리콘밸리 얘기를 들은 것 같아서 즐거웠다. 매우 흔한 스타트업 관련 책이 아닌 것도 좋았고...



마지막으로 아래 두 내용은 2018년에 와서는 저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서 남겨둔다.

페이스북은 지구상에서 사용자 데이터를 가장 욕심스레 수호하는 존재이자 데이터가 절대 떠날 수 없는 블랙홀과 같다.

페이스북의 모든 기술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며, 그 점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에 관한 데이터를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이 얼마나 명백한 자살행위인지 잠시 생각해본다면, ‘페이스북이 사용자 정보를 팔아넘긴다’는 밈의 허구를 곧 깨닫게 될 것이다.

2018/10/19 19:34 2018/10/19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