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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F8 2019 후기 #2

이 글은 Facebook F8 2019 후기 #1에서 이어진 글이다.

Facebook F8과 해커톤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일요일부터 해커톤이라서 토요일에 산호세로 내려왔다. 보통 사람들 만나러 내려오는 지역보다 훨씬 아래로 내려와야 했고 여기서부터는 Facebook에서 잡아준 호텔이었기 때문에 호텔도 꽤 좋았다. 체크인하고 토요일 저녁에 한국에서 온 해커톤 참가자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기로 해서 나도 놀러 나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참가 확정을 받고 참가하는 사람들과 채팅방을 열었을 때 느낌적 느낌으로 나랑 나이 차가 꽤 난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코딩만 하다가 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도 아니었고... 실제로 가서 만났을 때도 많은 분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났는데 예상외로 다들 나랑 잘 놀아주셔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국내에서는 콘퍼런스를 가도 아는 사람들 인사하고 하다 보면 새로운 사람과 얘기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3, 4일을 계속 같이 지내면서 얘기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과 친분이 생긴 점(나만 그런가)이 재미있었다.

해커톤 행사장

해커톤을 일요일 오전부터 시작했고 각 호텔에서 셔틀을 운행해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장소는 F8일 열리는 행사장 건너편인 City National Civic Center에서 열렸다. 총 170명 정도가 참여한 것 같고 개발자 외의 디자이너나 PM(?)도 있었다.

해카톤 참가 출입증

해커톤 주제는 UN에서 발표한 17개의 SDG 중에서 4가지를 선정해서 이 주제로 해커톤을 해야 했다. 인류의 빈곤이나 교육, 경제 등을 해결하는 주제라서 나한테는 좀 거창하게 느껴지고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이 앞에 나와서 한 명씩 자기 아이디어를 설명했지만 난 거의 못 알아들었고 아이디어 스피치가 끝난 뒤에는 각자 돌아다니면서 "어떤 개발자가 필요하다"거나 서로 "뭘 할 줄 아냐?", "무슨 아이디어를 구현할 거냐?" 물어보면서 팀을 구성했다. 잘 끼지 못하고 그냥 있다가 혼자 뭔가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오클랜드에서 온 PM과 르완다에서 온 개발자와 얘기를 하게 되어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해커톤용 구호 물품

해커톤용 음료와 간식

밤을 편안히 새면서 계속 코딩만 하라고 구호 물품과 음료 및 과자는 무한으로 계속 제공되었다. 이틀 동안 커피와 콜라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모르겠다. 식사 시간에도 사실 그리 배가 고프진 않았다.

해커톤에 참여하는 정말 수년만인 것 같은데 이틀 동안 작업을 하면서 "아! 내가 이래서 해커톤을 싫어했지"라고 깨닫게 되었다. 일단 외향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뭘 잘하는지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과 협업하는 것은 나한테는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었고 여기서 영어로 얘기하니까 훨씬 더 힘들었다. 그리고 나 포함 3명의 팀원 중 1명은 PM이라서 발표내용 정리만 하고 갔기 때문에 르완다에서 온 개발자가 프론트 앱을 만들고 내가 API 서버를 만들었는데 이 르완다 개발자의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영어를 알아듣기가 특히나 힘들었다. ㅠ

중간중간 인터페이스를 협의할 때 리스트 조회 요청도 POST로 해달라거나 이해할 수 없는 엔드포인트 분리 등의 요청이 있었지만 잠시 논의 후 1%도 동의할 수 없었지만, 영어로 설득하는 게 훨씬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만든 API 서버를 요청에 맞게 다 고쳐주었다.(부들부들... 영어공부 할 테다!) 그리고 물어봐도 제대로 말을 안 해서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바일 앱에서 API 요청을 다 모킹하고 실제로 내가 만든 서버는 전혀 찌르지도 않고 제출을 해버렸다. 말로는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붙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데 내 느낌에는 연동해 보려고 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영어가 잘 안 통하니까 귀찮았는지 둘째 날 피곤하다고 자고 일어나서 작업한다고 하고는 너무 많이 잠을 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분이 나빴다. 차라리 안 쓸걸 알았으면 난 그냥 해커톤에서 놀면서 다른 사람들 작업하는 거 구경하면서 재미있게 놀았을 거다.

해커톤 코딩하는 내 자리

그래도 글로벌 해커톤을 경험해본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끝나고 생각해 보면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준비도 해오고 얘기하면서(영어가 되든 안 되든) 참여했어야 좀 더 보람찬 시간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구현하고 하면서 생각한 건데 Facebook의 API가 대부분은 비즈니스에 관련된 게 많아서 이런 주제에 쓸만한 API가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프 API는 대부분 글 조회나 페이지, 그룹에 관한 거였고 쓸만해 보이는 건 메신저 API나 딥러닝 플랫폼인 PyTorch 정도였다. React, React Native 등도 있지만 이건 아이디어에 영향을 주는 도구들은 아니라서... 그래서인지 꽤 많은 팀이 챗봇을 만들거나 다른 회사의 도구를 가져다가 쓰게 되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는 페이스북 API를 알리기에는 SDG 주제가 좀 안 어울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해커톤 일정은 정말 빡셌다. 일요일 오전에 시작해서 화요일 아침 8시 제출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48시간이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해커톤을 밤을 새고 제출하고 와서 잠을 푹 자는게 맛인데 48시간이다 보니 첫날 잠에도 이틀 샐 자신은 없으니 들어가서 자고 둘째 날도 아침 8시 제출을 생각하니 잠을 자기도 뭐하고 안자기도 뭐한 상태로 계속 작업을 했다. 들어가서 몇시간 자고 오긴 했지만 이건 잠을 자지 말라는 일정 같기는 했다. 8시에 제출을 한 뒤에는 10시에 F8 컨퍼런스가 있었기에 키노트에 참석하고 끝나고 나면 12시 부터 심사를 받아야 했다. 한 2시쯤 끝나고 4시반에 결과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대기하다가 결과를 들으니까 하루가 끝나버렸다. 나는 좀 자고 오긴 했지만 몇몇 분들은 완전히 밤을 새고 계속 잠을 못자서 저녁에는 보기에도 너무 피곤할 정도가 되었다.

F8

키노트에서 발표하는 마크 저커버그

해커톤 제출하고 일찍부터 줄 서서 들어갔더니 꽤 앞에 앉아서 마크 저커버그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프라이버시 관련 얘기를 많이 했는데 메신저의 e2e 암호화 같은 건 국내에서는 일반화된 지 오래라서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메신저를 꽤 미는 느낌이 있었는데 타 메신저 앱 대비 가장 용량 적고 빠르다고 얘기를 했는데 내 속마음은 "너희는 Facebook 앱이 200메가 넘잖아"라고 하고 싶었다. ㅎㅎㅎ 그래도 이런 큰 행사의 키노트는 처음 와봐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페이스북이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던 "데이팅"과(국내에서는 아직 계획 없지만) portal은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서비스 외에 예전처럼 플랫폼이나 개발 쪽 얘기도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큘러스 부스

Portal 부스

위에서 얘기한 대로 F8 첫날은 키노트 외에는 해커톤 일정이 있었고 둘째 날은 체력이 고갈되어서 회복 모드를 취하고 있었기에 세션은 거의 듣지 못했다. 딱 하나만 들었다.(오히려 내가 듣고 싶었던 세션은 첫날에 더 많았다.) 앉아서 쉬고 부스 구경하고 또 쉬고 먹고 그러면서 보냈다. 부스는 꽤 크게 차려져 있었는데 내가 주로 가던 개발 콘퍼런스와는 완전 분위기가 다르게 다른 회사의 부스는 전혀 없고 모두 페이스북의 제품 부스만 있었다. 다른 서비스는 이미 잘 알거나 관심 없는 부분이라서 Portal을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좋아서 집에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따라서 카메라도 이동하고 여러 명이면 알아서 줌 인/아웃도 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페이스북 오픈소스 부스

사람이 엄청 많은 데도 행사장이 엄청나게 크고 준비가 잘 되어 있어서 쾌적하게 행사에 참여했던 것 같다. 음식도 맛있고 세션과 부스 등이 넓게 잘 분산되어 있어서 참여하기가 편했던 것 같다. 정말 사람이 붐빌 때는 저녁 네트워킹 파티 때였는데 이때도 시작할 때만 줄이 길고 이후로는 괜찮았다. 거의 클럽처럼 꾸며놨는데 보통 하듯이 조용히 음식 먹고 술 마시다가 돌아왔다. 너무 시끄러워서 영어로 얘기까지 하기는 힘들었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 좀 친해져서 같이 왔다 갔다 하면서 구경을 했다.

해커톤 현장에 방문한 저커버그

해커톤 심사 때는 저커버그도 잠시 들러서 아주 가까이서 저커버그를 볼 기회도 있었다. 저커버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일이 생기다니... ㅎㅎ 다들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듯 저커버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했다.

F8 로고

다른 회사도 요즘 콘퍼런스 지원을 잘 해주는 것 같긴 한데 운이 좋아서 지원받은 덕에 2주 동안 즐겁게 놀다가 돌아왔다. 나름 리프레시가 좀 필요한 시기였는데 기분 전환도 되고 사람들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F8 세션을 거의 못 들었더니 F8 후기인데도 F8 얘기는 정작 많지 않군. 그래도 기술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세션은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아주 아쉽진 않았다.

2019/05/28 04:29 2019/05/28 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