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유명한 책이지만 못 보고 있다가 3년 전 복간판이 나와서 구매해두었다가 이번에 읽었다. 작년에 "유닉스의 탄생"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유닉스의 탄생이 60년대의 벨 연구소를 얘기했다면 이 책은 50년대부터 해커의 탄생과 그 역사를 다룬다.(다루는 역사의 관점이 달라서 벨 연구소가 나오진 않는다.)
1부. 진정한 해커 > 캠브리지 : 50년대와 60년대
바로 PDP-1이었다. 컴퓨터 세상을 영원히 바꿔버린 기계, 아직 막연하던 해커 꿈을 현실로 한 걸음 다가오게 만든 기계였다.
제목 그대로 컴퓨터 혁명을 이룬 해커들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고 50년대의 MIT 부터 다루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를 기기에 밤새도록 모여서 해킹하면서 가진 정신이 잘 나와 있다. 너무 예전이라 아는 이름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너무 즐거워서 잠도 안 자고 뭔가 만들면서 공유하던 문화(그리고 책이 의도한 대로 해커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해커 윤리는 이랬다.
*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물론이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무엇이든, 그에 대한 접근은 무제한적이고 전적이어야 한다. 직접 해보라는 강령(Hands-On Imperative)을 언제나 지켜라!
* 모든 정보는 공짜라야 한다.
* 권위를 불신하라! 분권을 촉진하라!
* 해커들은 학위, 나이, 인종, 직위 등과 같은 엉터리 기준이 아니라 해킹 능력으로 판단한다.
* 컴퓨터로 예술과 미를 창조할 수 있다.
* 컴퓨터가 우리 삶을 더 낫게 바꿔 줄 것이다.
지금보다야 훨씬 투박한 느낌이기도 하지만(어떤 면에서는 더 순수한) 지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가진 특성(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이 신기하게도 이때도 비슷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교성이 떨어지는 점까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사교 활동이 활발한 해커도 일부 있었지만, TMRC-PDP 소속의 핵심 해커들은 스스로를 소위 '독신남 모드'로 설정했다. 이런 모드로 쉽게 빠져든 이유는 대다수 해커들은 애초에 사교성이 부족한 외톨이였기 때문이다. 해킹을 특히 매력적으로 만든 요인은 인간관계의 절망적인 무작위성과 반대인 컴퓨터 시스템의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요인은 해킹이 연애보다 훨씬 주용하다는 그들의 사고방식이었다. 그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애초에 슬러그가 컴퓨터에 빠져든 이유도 프로그램을 돌릴 때 느끼는 권력 때문이었다. 컴퓨터에 일을 시키면 반항하긴 해도 결국 시키는 대로 했다. 물론 결과는 사용자의 어리석음을 반영했지만. 흔히 컴퓨터에 뭔가를 하라고 시키면 달갑지 않은 결과를 내놓기 일쑤였다. 하지만 한동안 고문과 박해를 가하면 결국은 정확히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 순간 느끼는 희열은 세상 어떤 감정과도 비교하기 어려웠다. 중독성이 아주 강했다.
이때 이들이 밤새 하던 작업은 지금 내가 프로그램 작성하는 방식과는 많이 달랐을 거라 어떤 것이었을지 잘 상상은 안 가지만 그 느낌은 거의 비슷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할지라도 컴퓨터만 주면(요즘은 인터넷도 연결되어야 하지만..) 밤새도록 즐겁게 놀 수 있고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이 없는 것도 비슷해 보였다.
해커주의의 중요한 명제가 어떤 시스템이나 프로그램도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개선할 여지는 있다. 시스템은 유기적인 생명체다. 사람들이 사용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시스템은 죽는다.
"예전에는(1960년대에는) '여기 새 기계가 있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라며 달려들었습니다". 훗날 해커 마이크 비러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래서 우리는 로봇 팔을 만들었고, 언어 구문을 분석했으며, 스페이스워를 했습니다. 이제는 국가적 목적에 부합하는 이유를 내놓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이 흥미롭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살던 세상이 유토피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멋진 문화 말이죠. 우리 세상은 고립되었고 해커 복음은 전파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2부. 하드웨어 해커 > 북부 캘리포니아 : 70년대
이것이 해킹이었다. 자기 집 안방에서 컴퓨터를 만든다. 이것이 목표라면 목표였다. 특정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갖고 놀고 탐험하기 위해서! 궁극적인 시스템 하지만 이들 하드웨어 해커는 자신들의 목적을 외부인들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드물었다. 1974년 당시만 해도 보통 사람들이 가정에 컴퓨터를 둔다는 생각은 확실히 터무니없었다.
2부에서는 캘리포니아로 넘어간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실리콘 밸리로 그 해커 정신이 이어지고 이 책에서 2세대 해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보급화시키는 과정이 나온다.
프레드 무어는 다음과 같은 게시물을 붙였다.
아마추어 컴퓨터 사용자 그룹 홈브루 컴퓨터 클럽... 이름은 맘대로
직접 컴퓨터를 만드십니까? 터미널? TV 타이프라이터? I/O 장치? 혹은 다른 디지털 흑마술 상자? 아니면 시분할 서비스에서 시간을 구매하십니까?
그렇다면 흥미가 비슷한 사람들 모임에 오십시오. 정보를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무엇이든...
그리고 수없이 들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과 워즈니악과 애플이 등장한다. 1부에 비해서 알고 있던 이름이나 상황이 나와서 좀 더 재미있었다.
그보다 몇 년 앞서 벅미니스터 풀러는 한 시스템 안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현상들에게 생기는 각 부분을 합한 값보다 큰, 총체적인 위력인 동반 상승효과라는 개념을 내놓았고, 홈브루는 동반 상승효과가 생겨나는 교과서적인 예였다. 한 사람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자극이 되어 다른 사람이 큰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심지어 그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생겨났다. 누군가 알테어에서 난수 생성기 프로그램을 교묘하게 해킹하여 모두에게 쓰라며 코드를 나눠주면, 다음 회의가 열릴 즈음이면 다른 누군가 그 루틴을 활용하는 게임을 만들어왔다.
1부에 나온 해커 문화도 그렇고 홈브루에서도 그렇고 지식과 작업물을 공유해서 상승효과를 얻는 것은 여전했다. 오픈소스를 통해서 혹은 세미나나 콘퍼런스에서 고생해서 얻은 지식을 무료로 공유하는 문화는 이때부터 쌓아져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다. 이런 노력 덕에 지금 내가 좋아하는 엔지니어링 문화가 생긴 거구나 싶었다.
소프트웨어 제작자가 뭔가 대가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이 모두의 소유라는 아이디어를 포기하려는 해커도 없었다. 이 아이디어를 포기하면 해커 이상향에서 사라지는 무분이 너무 많았다.
3부. 게임 해커 > 시에라 : 80년대
해커 윤리가 시장을 만났다.
3부 80년대로 와서는 게임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3세대 해커라 부르는 사람들은 2세대 해커들이 각 가정에 보급한 컴퓨터에 돌릴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게임으로 해킹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해커의 예술적인 목표가 시장과 잘 맞아떨어졌다. 시장은 기대치가 없었고, 해커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게임을 즐겁게 만들었고, 자신의 예술적 기교를 보여주는 멋진 기능으로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치장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지식이 없으면서도 컴퓨터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해커들을 감동시킨 요소들도 점차 가치를 잃어갔다.
물론 게임은 거대한 시장이었기 때문에 앞에서의 순수함과는 달리 돈이 엮이기 시작했다.
3세대 해커들은 그린블랫과 고스퍼가 놀라 자빠질 만큼 해커 윤리를 훼손했다. 모두 돈 때문이었다.
알고 있는 게임 회사들의 성장 과정 등을 들을 수 있었지만, 비즈니스와 해킹이 만나면서 충돌 나는 부분에서 아무래도 비즈니스 중심으로 많이 돌아가는 느낌도 있어서 좀 안타깝기도 했다.
4부. 마지막 진짜 해커 > 캠브리지 : 1983년
켄 윌리엄스가 집들이를 열었을 무렵, 즉 MIT TMRC가 TX-0를 발견하고도 25년이 지났을 즈음, 자신을 마지막 해커라 부르는 사람이 테크스퀘어 9층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연구실은 인쇄물, 매뉴얼, 간이침대, PDP-6의 직계 후손인 DEC-20에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의 껌뻑임으로 어수선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스톨먼이었다.
마지막 해커 리처드 스톨만이다. 1971년에 MIT에 왔으니 1부에 나오던 문화를 직접 겪지는 못해도 그다음 세대로 이어받았을 테고 3부처럼 이제 순수한 해킹에서 비즈니스가 필요한 단계로 넘어오면서 해커의 윤리가 망가졌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스톨먼은 해커 윤리를 지키지 못한 연구실의 실패를 몹시 슬퍼했다. RMS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인이 죽었다고 말했고, 상대는 한참을 대화하고 나서야 이 야위고 애처로운 친구가 가리키는 대상이 비극적으로 죽은 신부가 아니라 연구 기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리처드 스톨먼은 MIT를 떠났다. 스톨먼은 UNIX라는 유명한 독점 운영체제 버전을 새로 만들어 모두에게 무료로 나눠주겠다고 결심했다. 'Gun's Not Unit'를 의미하는 GNU 프로그램 제작은 스톨먼이 '자신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고서도 컴퓨터를 계속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MIT에서 번성했던 해커 윤리가 원래의 순수한 형태로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목격한 스톨먼은 GNU와 같은 수많은 작은 행동이 외부 세상에서 해커 윤리를 이어가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 책에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결국 리처드 스톨만이 Free Software 재단을 만들고 여기서 OSS가 파생되고 지금의 오픈소스 문화가 그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오는 그 정신과 역사를 한 번에 읽은 책이라 감회도 새롭고 역사적 가치로도 이 책이 복간되어서 참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헌신적이며, 혁신적이며, 불손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일컫는 해커를 미국 헌법 초안자들 이래 가장 흥미롭고 유능한 두뇌 집단으로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기술을 해방시키겠다고 나서서 실제로 성공한 무리는 그들뿐이다. 그들은 미국 기업의 철저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해냈을 뿐만 아니라 결국 미국 기업이 자신들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보급해 정보 시대의 중심에 개인을 세우며, 미국 경제를 구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소문화 중에서 가장 조용했던 해커 문화는 이후로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강력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 스튜어트 브랜드, 홀 어스 카탈로그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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