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약간 떠들었기 때문에 지인(?)들은 알고 있지만, 최근에 사내 벤처에 통과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입사한 이래 계속 관심이 있던 제도이지만 이게 또 좀처럼 쉽지 않아서(여건상, 규칙상)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의기투합이 돼서 하게 됐다. 3월 중순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빈도가 들쑥날쑥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인데 그동안 바빠서 이 글도 이제야 올린다.
지난 1년은 나한테 심적으로 많이 지치는 시간이었다. 이직하면서 올렸던 글에도 썼듯이 뛰어난 사람들과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고 방황의 시간을 꽤 보냈다.(몸은 무척 편안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이직한 이유가 1) 좋은 동료와 2)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 였는데 2번은 애초에 사라졌고 1번마저 올 초에 없어지면서 심각한 멘붕에 빠져버렸다.(이 당시에 트위터에서 하도 구시렁대서 아시는 분들은 아시는...) 사실 그 당시에는 퇴사까지도 고려하고 있었고(그 뒤에 상황은 또 달라지긴 했지만...) 그동안 틈틈이 서비스 아이디어를 농담처럼 주고받던 사람과 올 초부터 구체적으로 얘기하다가 이번에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아이디어
시작 자체는 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팀원의 아이디어였고 사실 난 해당 부분에 대한 큰 요구사항이 없었다. 내가 요구가 많지 않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라서 초기에 많이 망설이기는 했지만, 초기에 구체화한 설명을 들었을 때 맘에 든 부분이 있어서 시작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 때문에 아이디어에 깊숙이 들어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실제로 아이디어만 가지고 서비스까지 발전하는 과정에 함께한 것은 처음이었다.(혼자 만든 거 말고...) 이 과정은 힘들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논쟁도 많이 했지만 꽤나 즐거웠다. 구체화하였다고 생각했음에도 몇 번이나 방향을 뒤엎으면서 다시 시작했고 팀원들끼리 생각을 맞추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평소에 아이디어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 구현 단계에 가니까 고민할 내용이 하나둘이 아니었고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정리되더라도 팀원끼리 의견일치까지 봐야 하니까...
그럼에도 온종일 진도가 못 나가면서 회의만 하고 있어도 다른 회의와는 달리 별로 짜증 나지 않았다. 코드 한 줄도 못 짜고 회의만 하고 있어도 낭비라고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회의냐 아니냐가 아니라 회의에서 무슨 얘기를 하느냐에 달린 거겠지...
어쨌든 통과
힘들고 긴장된 시간이었지만 지난달 중순에 사내 발표로 통과해서 지금은 별도 팀으로 모여서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단계로 보면 1차를 통과하고 2차 심사를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사내 벤처라는 안전망에 있으면서 스타트업과 비교하는 게 스타트업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서비스를 처음부터 만든다는 과정은 비슷한 부분이 많으므로 스타트업에서 많은 부분을 배우려고 하고 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지만 항상 해보고 싶었던 서비스 만들기를 하면서 많은 걸 느끼고 있다.
- 막연히 내가 생각했던 건 3달 빡빡하게 업무시간 내내 내가 원하던 프로젝트를 코딩하는 모습이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는 대부분 서류를 작성하고 코드를 작성하는 일 외의 업무에 시간이 다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코드의 진척상황이 예상보다 느리다.
- 업무와 내 생활의 경계가 없어졌다. 삶에서는 제일 크게 느끼는 부분인데 전에는 업무랑 내 작업이 명확히 나누어져 있었고 퇴근 후에는 업무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근데 회사 일이 아니라 그냥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되다 보니 업무시간과 퇴근 후의 작업의 경계가 없어졌다. 야근을 많이 하긴 하지만 어차피 집에나 카페 가서 계속 이어서 작업을 할거라서 퇴근이라는 경계가 없다.
- 내가 퇴근하고 하는 게 무척 많았구나 하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퇴근하고도 계속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회사 일 외에 개인적으로 하던 일이 대부분 멈추거나 상당히 지연이 생기고 있다. 이건 뭐 익숙해지거나 급한 시기가 좀 지나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을 듯...
- 기술선택을 완전히 내 맘대로 할 수 있게 되니까 오히려 고민이 많아졌다. 토이프로젝트와는 달리 프로덕션 레벨로 올려야 하니까 하고 싶은 것과 우려되는 것들이 섞여서 계속 고민하고 이랬다저랬다 하게 된다.(가뜩이나 속도도 느린데...)
- 지금 어느 정도로 달리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노는 건 아닌데 생각보다 속도는 느린 것 같은 기분이고 좀 더 달려야 하나 싶으면서도 하루 이틀에 다 쏟아부어서 할 수는 없으니 생각만 많아진다. 다른 볼일을 좀 보게 되면 내가 지금 이거 하고 있어도 되나 싶기도 하면서 그렇다고 계속 프로젝트 하면 좀 쉬기도 해야 되고.. 흠... 어렵다.
- 아직 시작이지만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구해서 기대가 많이 된다. 그동안 사람 구하려고 노력한 시간이 의미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의 첫발을 내딛고 있어서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다. 할 일은 많은 데 투입할 자원은 정해져 있으니 대책은 머리를 맞대도 나오지 않는다. 최대한 달려보면서 상황 보면서 움직이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겠지.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말 많이 배우고 즐겁게 지낼 것 같다. 잘 되든 안 되든 결국 우리가 잘했느냐 못했느냐에 달린 거 뿐이니 오히려 집중도는 높아지는 것 같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