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sider's Dev Story

Stay Hungry. Stay Foolish. Don't Be Satisfied.
RetroTech 팟캐스트 44BITS 팟캐스트

2020년 이직

작년에 이직하고 1년 반 만에 다시 이직하게 되었다. 이직할 때마다 글을 적는데 매번 적다 보니 제목 짓기가 어려워서 제목에 년도을 붙였다. 다양한 이유로 자주 이직을 하게 되어 어느새 8번째 회사가 되었다. 작년에 ODK Media로 오면서 적은 글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오래된 글은 아니라 기본적인 생각은 거의 비슷하다.(이직 글은 매번 쓰긴 했지만, 이번에는 유독 쓰기가 쉽지 않았다.)

1년 반 동안 무엇을 했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돌아보면 1년 반밖에 안 지났구나 싶기도 하다.

SRE

입사를 SRE로 했기 때문에 AWS 인프라 관리과 CI/CD 설정, 관리 같은 것들이 주 업무였다. 1년 정도는 다른 분하고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그분이 Kubernetes로 인프라를 옮기고 정리하는 작업을 주로 했고 나는 타팀에서 들어오는 자잘한 인프라 작업을 위주로 하다가 그분이 퇴사한 뒤로는 Kuberntes 클러스터까지 맡아서 작업했다. 혼자서 하기에는 업무량이 많아서 인프라를 개선하고 정리하는 작업까지는 못하고 문제 생긴 부분 찾아서 처리하거나 새로운 서비스 올리는 작업을 위주로 했다. Kuberentes에 관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지만 아주 깊게 알지는 못한다.

Head of Service Development

입사는 SRE로 했지만, 작년 가을부터 서비스 개발팀을 맡게 되었다. 여기서 서비스 개발팀은 백엔드팀, 프론트엔드팀, 모바일팀을 묶은 팀인데 복잡한 상황 + 나의 오지랖으로 인해서 서비스 개발팀을 맡게 되었다. 당시에도 서비스 개발팀을 맡게 되면 인프라에는 시간을 거의 못 쓸 것이라는 것은 자명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지만 서비스 쪽이 잘 움직여야 인프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에 SRE 역할을 버리지 않은 채로 서비스 개발팀도 맡게 되었다. 물론 내 시간에 80% 정도는 서비스 개발팀에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회의가 많아졌다. 업무시간의 반 정도는 항상 회의였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회의 너무 많다고 줄여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은 거 보면 실제로 많긴 했던 것 같다. 전에는 어떻게 사람이 9시까지 출근하지? 같은 생각을 많이 했는데 미국 오피스와 회의를 하려면 아침밖에 없었기 때문에 9시에는 항상 회의가 있었고(재택이라 기상해서 바로 회의에 들어가긴 하지만...) 8시에 있는 날도 꽤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을 많이들 믿어주어서 일하는데 아주 어렵진 않았다. 물론 그 외에도 정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미국에 있는 개발팀과도 위클리를 해야 해서 이 위클리는 매주 새벽 2시에 했다. 나한테는 차라리 아침보다는 새벽이 편했다. 아침에는 다른 회의들로 회의를 잡기도 어려웠고... 올해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미국 출장도 2~3번은 더 갔을 텐데 2월 출장을 마지막으로 다신 가지 못했다.

이전까지는 시니어 개발자로서 협업하면서 일한 경험은 있지만, 매니징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필요한 자원을 내가 끌어다가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내가 원하는 매니저의 모습 같은 것도 깊게 생각해 본적이 오래된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나한테 Head라는 역할은 업무의 방향과 일정을 정리하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회사의 방향이랑 업무가 잘 어우러지게 만들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팀원들한테 설명하고 무리한 일정이나 업무는 막고 하면 다른 부분은 알아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알아서 될 거라고 생각했다기보다 나한테 보이는 문제의 크기가 엄청 차이 났다.

업무를 할당하고 하는 부분에서도 나이브한 면이 있었지만, 팀에는 업무가 진행되게 하는 일도 있고 팀원들을 관리하는 일도 있는데 나는 전자에 훨씬 치우쳐진 사람이었다. 미처 생각 못 하고 있었지만 업무 외에 케어를 받거나 하는 등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잘 못 했고 그 부분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 그런 부분에서 매니저로서의 경험치가 많이 부족했다. 처음 팀을 맡았을 때는 11명이었지만 팀은 금방 22명으로 2배 커졌고 22명쯤 되니 개개인이 어떻게 일하고 뭘 하고 있는지는 거의 알 수 없게 되었고 나한테 에스컬레이팅되는 이슈들만 보기에도 급급해졌다. 핑계긴 하지만 내가 매니징에 경험치를 쌓는 시간보다 팀이 커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업무상 매니저를 하고 있었지만 원래 커리어 계획에 매니저가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엔지니어링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프라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개발을 주로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있는 것 같아서 한 쪽에 고민은 계속 있었다. 계속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데도 몰입도는 상당히 좋았다. 업무량이나 시간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 몰입이 되면 큰 스트레스 없이 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같은데 올해 내내 이 상태로 업무를 했다. 그렇다 보니 위에서 얘기한 고민은 그냥 머릿속에 있는 고민 정도이고 많이 생각하진 않고 있었다. 발 담가놓은 일도 많았기 때문에 내년쯤 정리가 좀 되면(그런 날이 왔을까?) 본격적으로 생각해 볼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냥 막연히 올해는 이직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매니징을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이것도 내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 차이가 좀 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배웠고 그 경험치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더 나았을까? 하는 포인트들이 몇 가지 있어서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좀 더 나은 선택 혹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타팀과 업무 조율하느라고 정작 개발팀과 개발 얘기는 많이 못 하고 시간도 같이 못 보낸 점이 아주 아쉽다.

영어 공부는 안 했다

회사의 절반이 미국에 있다 보니 영어 회의도 종종 있었고 외부업체와의 회의도 대부분 미국업체다 보니 영어로 해야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 팀에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개발자가 4명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개발팀과는 매주 새벽 2시에 위클리 회의를 했다. 생각하는 걸 다 말할 수는 없어서 답답하기는 했지만, 개략적으로는 엉터리 영어로 어떻게든 말하면 그래도 잘 알아들어 주었다. 업무적 관계가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한 호의가 있어서 이런 부분은 더 쉽게 의사소통이 되었다.

이전보다야 영어를 쓸 기회가 많기는 했지만, 또 영어를 업무에서 쓴다고 매일 자극을 받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극보다 빨리 익숙해져서 영어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기보다는 그냥 그 상황에 안주하게 되었다. 어차피 개발하면서 영어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업무에서 계속 영어를 써야 하면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그냥 영어 공부를 안 하는 나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었다. 그냥 내가 영어 공부를 안 한 거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국인이 많기 때문에 주 언어를 영어로 일한 것은 아니지만 업무에서 영어를 써서 해본 경험과 한계를 알게 된 것은 좋았다.

그런데도 이직

이직에 대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하다가 갑자기 당근마켓으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당근마켓에는 친한 사람들도 좀 있고 stdout.fm 팟캐스트 때문에도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그렇다 보니 당근마켓과 이직 얘기를 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시기나 상황이 맞지 않아서 같이 하지 못했고 무엇이든 그렇듯이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진지하게 다시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얘기하다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무엇보다 작년 초에는 당근마켓이 월 사용자가 100만에서 200만 정도였는데 급격히 성장해서 천만 사용자가 되었다. 아무래도 천만이라는 숫자는 꽤 상징적인 숫자고 엔지니어다 보니 이 천만이라는 트래픽이 탐이 났다. 높은 트래픽은 겪어보고 싶다고 겪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트래픽이 높아지면 엔지니어링 관점에서도 많은 부분이 도전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SRE 팀의 몇몇은 전에도 같이 일해봤기에 믿을 수 있고 배울 점도 많은 사람이라는 점도 나한테는 컸다. 마지막으로 나한테 일할 때 "재미"라는 부분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같이 일하면서 재밌게 팟캐스트랑 유튜브도 하자고 했을 때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면서 고민은 많아졌다. 발 담그고 있던 프로젝트가 너무 많았고 갑자기 내가 빠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결국은 이직을 하기로 했다. 기존 회사에서 나가기 좋은 시기와 새 회사에 합류하기 좋은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면 좋겠지만 보통 그렇게 되진 않으니 한쪽을 택해야 했다. 생각해보니 자의로 이직을 하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복잡한 사정으로 최근에 이직은 계속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함께 퇴사했기 때문에 인수인계한다거나 뭔가 미안함을 느끼고 나올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팀까지 맡아서 일하던 상황에서 나오는 상황이라서 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 무섭기도 했다. 지금 조직에서는 신뢰도 많이 쌓아놨고 그동안 노력해서 나에 대한 증명도 많이 해놓은 상태인데 다시 이를 리셋하고 새 조직에서 다시 신뢰를 쌓고 증명해나가야 한다는 건 몇 번을 해도 무서운 부분이긴 하다. 이직한 지 일주일 되었는데 업무를 다 파악하고 있다가 하나도 모르는 환경에서 적응하려니 붕 뜬 기분이라서 조급함이 좀 느껴지기도 한다.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진 상황이라 입사하자마자 재택을 하려니 확실히 업무 파악 등이 좀 어렵긴 하고 업무 파악이 잘 안 된 상태에서 업무 긴장도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IT 쪽 직장인으로 다른 업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참 어려운 한 해다.) 뭐 다들 비슷한 상황이니 노력해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빨리 적응해서 다시 몰입해서 즐겁게 일할 수 있기 기대하고 있다.

2020/12/15 00:50 2020/12/15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