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이직을 하게 됐다. 어느새 5번째 회사이지만 지난 회사는 3년 반 가까이 다녔으니 나로서는 꽤 오래 다닌 셈이다.(난 3년 정도는 이직하기 좋은 주기로 보는 편이다.) 글을 쓰려고 생각을 하면서 저번에 이직하면서 쓴 글을 읽어봤다. 뭔가 그사이에 크게 발전하거나 달라지진 못했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적어라도 놓으니 몇 년 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일로 전 회사가 내가 다닌 회사 중 가장 짧게 다닌 회사가 될 것 같았는데 그래도 3년 넘게 있었던 건 사내 벤처에 통과해서 WanderWorld를 시작했기 때문이다.(지금의 VOLO) 사내 벤처를 감히 스타트업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서비스를 바닥부터 만들어 간다는 것 팀을 만들고 서비스를 키워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힘들기도 했고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면서 그 전에 갖고 있던 스타트업에 대한 로망과 현실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던 사람의 하나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앞으로의 경력이나 내 발전을 생각하면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올해는 이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외국 회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했다. 실제로 가면 또 안 좋은 점이 많이 보이겠지만 밖에서 보이는 그들의 퍼포먼스나 문화 등은 글이나 발표 등으로는 다 이해되지 않았기에 직접 가서 그들과 협업을 해봐야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영어 면접도 기회가 되면 연습 겸 최대한 보기는 했지만, 오히려 내 영어가 실제로는 얼마나 처참한지 느끼게 된 시간이었고 생각만 하고 해외로 가기 위한 준비는 거의 하지 않았다는 걸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 항상 영어는 개발 다음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 설명하고픈 내용이 내 영어에 갇혀서 아주 평범한 내용만 얘기하게 될 때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내에 있는 외국계이지만 실제로는 영어로 많이 일해야 하는 회사와도 운 좋게 연결이 되어서 면접 절차도 어느 정도 진행이 돼서 기대를 상당히 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최종까지 가지 못하고 떨어졌다. 떨어진 게 아쉽긴 했지만, 면접절차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그 과정에서 느낌 부분이 정말 많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오랫동안 일이 바빠서 잠수 모드에 있었던 관계로...) 지인들을 만나서 근황을 살펴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누가 보자고 하면 일단 만나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목표인지 등을 물어보고 다녔다. 얼마 전에 KSUG에서 주관한 경력관리 세미나에서 발표도 했지만, 당시에도 내 경력에 대해서 고민이 더 많았다. 경력이 길어지니 고민이 훨씬 많아져서 나도 어떤 회사를 가는 게 좋을지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지 나는 어떤 서비스를 좋아하는지 제대로 결정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도 얘기하고 하면서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예를 들면 이런 고민이었다.
- 어떤 일을 해야 재미있게 할 수 있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지...
- 개발자는 서비스에 어느 정도의 관심 혹은 좋아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예를 들어 뷰티 서비스를 개발한다고 하면 나는 뷰티 서비스에 대한 비전을 얼마나 가져야 하는가? 엄청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크게 상관이 없을까?
- 회사의 규모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큰 회사에서 좋은 인프라와 지원을 받으면서 개발하는 게 좋을지 아주 초기 스타트업에서 모험을 해보는 게 좋을지 그 중간 정도가 좋을지....
- 웹을 주로 해왔고 최근엔 Node.js를 했는데 계속 이쪽으로 집중할지 다른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고 영역을 넓혀야 할지...
- 업무의 강도는 어느 정도까지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은 오만가지가 있었지만, 작년부터 알게 된 것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지만 내가 실제로 관심 있는 것은 서비스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개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덕션 서비스에 맞는 애플리케이션과 인프라를 만들고 자동화를 하고 서비스에 필요한 요소에서 개발이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고 이런 부분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는 것들도 대부분 내가 필요한, 그러니까 개발에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하지만 서비스와 상관없이 프레임워크나 이런 지원도구만 따로 만드는 것은 또 취향이 아니라서 결국은 서비스에 발을 걸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생각이 다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얘기가 좀 오가던 회사들 위주로 정식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퇴사한 회사가 최근 판교에서 선릉으로 이사를 오니까 출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갑자기 삶의 질이 달라진 관계로 이번에도 주로 가까운 회사들을 위주로 진행했다.(누가 나에게 "니가 서태웅이냐?"라고 했지만.. ㅋ ) 지인이 있어서 좀 캐쥬얼하게 진행되기도 했고 정식으로 지원해서 면접절차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서 날 잘 봐준 곳도 많지만, 또 많은 곳에서 떨어져서 우울해질 뻔;;; 이렇게 여러 회사를 단기간에 면접 보고 한 것은 처음이라 꽤 힘들었지만 다양한 회사를 만나보면서 나도 조금씩 구체적이 되기 시작했다.
- 많은 질문을 하다 보니 내가 질문을 하는 목적이 재미있을까?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서의 재미는 개발이나 일할 때의 재미를 얘기한다.
- 재밌어야 퍼포먼스도 잘 나오고 주니어 개발자가 아니므로 입사 후 내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회사에도 좋고 나한테도 좋은 일이다. 이번에는 대기업보다는 작은 회사에 더 관심을 많이 두고 있었고 이런 기업에서 인력이 나갔다 들어올 때의 비용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기에 이 부분은 중요한 일이었다.
- 재미있을까?라는 질문은 상당히 모호해 보이지만 뜻밖에 면접하다 보면 뚜렷하게 느낌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진행하면서 점점 설레고 재밌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있었고 중간에 내가 이미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면접은 양방향이라 내가 느낌이 별로면 회사 쪽에서도 느낌이 별로인지 결과가 안 좋았던 적이 많았다.
- 경력이 있어서인지 뜻밖에 "웹 개발자"라는 포지션으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건 내가 특별한 포지션 대신 프론트와 백엔드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유지했던 이유 때문이긴 하다.
- 내 예상보다는 스타트업에서 Java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타트업의 기술이란 CTO나 초기멤버가 익숙한 기술을 쓰기 마련이라서 Java 인력이 많은 국내에서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한데 동적 타입 언어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좀 의외였다.(물론 내가 만나본 회사 기준이다.)
이렇게 진행을 하다 보니 2~4 회사로 좁혀졌고 최종 면접 단계에 가면서 나도 결정을 해야 했다. 이 글에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중요한 연봉도 고려요소였지만 내 입맛에 맞게 모든 회사의 연봉을 다 들어보고 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상황에 맞춰서 돌아가지는 않았으므로 연봉에 대한 정보 없이 거의 결정을 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가장 재밌게 일할 수 있는 회사, 내가 집중해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회사로 마음이 쏠렸다. 이미 SNS에서 다 공개를 해서 비밀은 아니지만(그러고 보니 전에는 퇴직할 때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입사하고 글을 쓰는구나.)
그렇게 결정한 회사가 스마트스터디이다. 꽤 친분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입사지원을 할 회사 후보에서는 시야 밖에 있다가 꽤 막바지에 연결이 돼서 입사를 하게 된 게 나름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계속 해왔던 웹 개발을 하면서도 내가 노력만 하면 많은 부분에 참여하면서 경험을 늘릴 수 있다는 부분이 좋았다. 특히 만나서 얘기를 진행할 때 추구하는 회사 및 개발 문화 등이 만족스러웠고 커뮤니티와 오픈소스에 친화적인 사람이 많다는 것도 좋아서 금세 마음이 쏠렸다. 기술 쪽을 생각해도 전에 Java를 했었기에 최근 3년은 Java를 전혀 안 했지만 다시 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면접 등을 진행하다 보니 할 수는 있어도 재미있게 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회사나 문화 등 많은 부분이 맘에 들었지만 내 기술 경력을 생각했을 때 기술 셋이 많이 달라서 선택을 못 한 곳도 있다. 물론 스마트스터디도 Python위주의 회사라서 Python을 한 번도 안 해본 나에게 약점이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이 부분을 양해해주었고 내가 쌓아온 Node.js 등에 대한 경력도 인정해 주어서 어느 정도 양쪽을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JavaScript의 세계에만 갇혀있어서 프로그래밍 언어적으로 약점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다른 언어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아직 출근한 지 2일밖에 되지 않아서 맥북 세팅하고 적응하느라고 정신없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설레서 기분이 좋은 상태이다.(이젠 내가 열심히 잘하는 것만 남았겠지...)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좋은 기회와 제안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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