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sider's Dev Story

Stay Hungry. Stay Foolish. Don't Be Satisfied.
RetroTech 팟캐스트 44BITS 팟캐스트

1년 반 정도의 원격 근무 경험

Automattic을 포함해서(바지 벗고 일하면 안 되나요? 참고) GitHub 등 많은 해외의 많은 회사가 언젠가부터 원격근무를 중심으로 일하면서 어느새 나한테도 원격근무로 일하는 건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오픈소스를 보면서 개발자가 원격으로 일하면서도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많이 보았고 원격근무를 중심으로 일하는 회사들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본 적은 없었으므로 상상만 했지 현실적인 부분은 잘 몰랐다.

그러다가 지난 회사에서 1년 반 정도 원격근무를 병행해서(100% 원격은 아니니까) 일했고 그 경험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원격근무를 해보고 나니 더욱 원격근무의 지지자가 되었다. 앞으로 원격근무를 더 많이 할 기회가 생기면(그러기를 기대한다) 원격근무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내가 있었던 조직은 100% 원격으로 근무한 것은 아니고 사무실에 내 자리가 있지만 필요할 때는 공유하고 원격근무를 하고 얼굴을 보고 일해야 할 일이 있거나 하면 사무실로 나가기도 하는 등 원격근무와 자율출근이 섞인 형태로 일했다. 사무실에 나가는 것도 원격 근무의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그냥 원격근무라고 부르고 싶다.

원격 근무? 재택 근무?

사람마다 용어를 다르게 쓰는데 나는 "원격 근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핵심은 물리적인 공간에 모이지 않은 상태로 일을 한다는 것인데 재택근무는 "집에서 일한다"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핵심이 전달 안 되는 느낌이다. 원격 근무를 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이 한 곳에 있지 않을 뿐 집에 있든지 카페에 있든지 어떤 코워킹 스페이스에 있든지 상관없다. 심지어 사무실에 있을 수도 있다.

원격 근무는 복지일까? 아닐까?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하고도 이런 얘기를 여러 번 나누었는데 나는 복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HR은 아니라 정확한 복지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정의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복지는 "직원이 업무에 더 집중하고 잘할 수 있게 회사가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출이나 보험 같은 건 개인 일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줄여주는 것이고 식대 지원이나 리프레시 휴가 같은 건 만족도나 행복감을 높여주어서 직원들이 더 일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원격 근무는 복지다. 전에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깨닫지 못했지만, 원격 근무를 하고 나서 내가 불필요한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왔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그냥 원격근무를 했다. 길 가면서 넘어질까 조심하거나 옷 다 젖으면서 사무실에 가느니 그냥 집에서 일하거나 동네 카페에서 일하는 게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잠시 병원을 가야 하거나 개인적인 볼일로 어디 들려야 할 때는 예전 같으면 반차나 휴가를 써야 했기에 내가 언제 휴가를 쓸 수 있고 이런 일 때문에 내 휴가 쓰는 것도 신경 쓰이니까 다른 일정과 맞추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했는데 원격근무를 할 때는 그냥 일하다가 얘기하고 갔다 오거나 좀 늦게부터 일한다고 공유하면 그만이었다. 이 볼일이 먼 곳에 있어도 크게 신경 쓸 것 없이 그냥 볼일 보고 그 근처 카페 같은 곳에서 일하면 끝이었다. 사소하게는 업무 중에 집중이 안 되거나 너무 졸리거나 하면 얘기하고(중요하다!) 좀 쉬거나 잠시 눈 붙인 후에 다시 집중해서 일하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나는 왜 모든 회사가 9~10시 사이에 모두가 사무실로 나오도록 해서 생기는 이득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난 출퇴근 거리가 가까운데도 출퇴근 안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서 출퇴근이 먼 사람의 이득은 훨씬 클 거로 생각한다. 내가 가장 회의감을 느낄 때가 아침에 출근하는데 배가 아파서 지하철을 내렸다 가면 시간 내에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사무실까지 참을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이다.

사소한 출퇴근 문제부터 개인 볼일까지 원격 근무를 하니까 회사 출퇴근과 충돌해서 신경 써야 하는 많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사라지면서 업무 강도가 높더라고 내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다. 앞으로는 연봉이 더 낮아도 원격 근무가 가능하다면 충분히 고려할만한 정도가 되었다.

결국, 회사는 직원들이 더 일을 잘 할 수 있게 여러 가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인데 국내의 수많은 회사가 왜 원격 근무에 대한 고민이나 실험은 하지 않는지 궁금할 뿐이다. 다른 복지에 비교해서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닌데... 노파심에 말하자면 복지도 회사마다 다르듯이 원격 근무가 모든 조직이나 업무형태에 다 좋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죄책감

원격 근무를 오래 꿈꿔왔음에도 처음 원격근무를 했을 때 내가 당황했던 것은 죄책감(?)이었다. 사무실로 출근해도 때로는 팀원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중간에 좀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너무 집중이 안 돼서 어영부영 보내기도 한다. 아니면 올림픽이나 사회적 큰 이슈가 있으면 방송이나 글을 틈틈이 보기도 한다. 회사 경영자 처지에서는 온종일 일만 열심히 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개인 일도 있고 기분의 기복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겠는가? 아무튼, 회사에 출근해서 오늘 일을 제대로 못 했다고 하더라도 일정에 큰 문제가 있지 않으면 퇴근 시간이 되면 퇴근을 하게 된다. 혹은 퇴근은 못 했다고 하더라도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 야근한다는 개념으로 일을 하게 된다.

사무실에 앉아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내 모니터를 감시하거나 내가 얼마나 일하고 있는지 시간별로 다 보고 있는 것은 아님에도 막상 카페에 혼자 앉아 있으니 죄책감(?)이 꽤 컸다. 이건 성격에 따라 다를 수도 있긴 한데 아마 이 죄책감은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일한다고 생각할까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생각한다.

개발 같은 경우 3~4시간 열심히 개발했지만, 완성이 안 되거나 처음에 생각을 잘못해서 했던 작업을 다 버리고 새로 하는 일도 꽤 많이 있다. 사무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그냥 다시 해야 해서 짜증 나는 정도의 일이었는데 카페에서 채팅도 안 하고 3~4시간 작업하다가 이런 상황을 만나면 엄청 당황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으로서는 내가 3~4시간 열심히 일했는지 침대에 누워서 잤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이런 상황에 빨리 간단한 일을 찾아서 커밋을 올리면서 내가 일하고 있음을 알리거나 괜히 채팅에 3~4시간 일했던 게 날아갔음을 투정 부리면서 "나 놀지 않았어요"를 최대한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내 경우에는 이런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는데 한 6개월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처음부터 괜찮은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최소한 그랬다. 생각해 보면 이 죄책감은 이상한 게 사무실에 있다고 하더라도 옆 사람이 어떤 작업을 현재 하고 있고 어떻게 실패했고 하는 것을 다 알지는 않는다. 이슈 단위나 큰 일정에 따라 확인은 하지만 개별 개발자가 시간마다 어떤 작업 하고 있는지는 당연히 모르고 관리자가 아니라 동료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이런 죄책감은 실제로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익숙한 사무실 출근을 안 하고 원격으로 일해서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원격 근무를 도입한 조직이라면 팀원들한테 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주어서 신뢰가 생기게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참고로 동료와 업무 공유를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 업무 공유는 원격 근무에서 훨씬 더 중요한데 이건 뒤에서 더 얘기하겠다.

오버워크

국내에는 아직 원격 근무가 많지 않고 평균적으로는 근무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원격 근무를 쉬면서 일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느낌이 있다. REMOTE 책(국내 번역서는 "리모트 : 사무실 따윈 필요 없어!")을 보면 "관리자들은 원격근무를 하면 사람들이 일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지만, 열정 있는 직원들이라면 오히려 원격근무에서 너무 많이 일해서 걱정이라고 한다."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랬다. 원격 근무에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계속 일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업무 시간이 나한테 다 맡겨졌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더 느끼게 되었고 원격 근무라는 게 내가 가장 집중하고 생산성이 높을 때 일을 할 수 있다 보니까 그런 상태에 들어갔을 때 더 많이 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일이 잘 안될 때는 조금 일찍 들어가기도 하지만 일이 잘 될 때는 원래도 퇴근 시간이라는 개념이 크지 않으므로 그냥 일을 끝낼 때까지 계속하게 되었다. 또 개발은 코드를 작성하다가 갑자기 멈추기 싫을 때가 많은데 이런 때는 시간에 상관없이 계속하게 되었다.

앞의 죄책감과 비슷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원격으로 일하면 내가 어느 정도로 평가받고 있는지 잘 모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전에도 몰랐는데 원격 근무를 하면 실제로 커밋한 코드나 논의 등 일로만 평가받으니까 더 신경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약간 일을 더 해서 충분히 일을 잘하고 있다고 어필하게 되는 것 같다.

원격 근무는 비동기 협업을 의미한다

원격 근무에 대한 어떤 규칙은 없었지만 1년 반 정도 원격근무를 하면서 원격으로 더 일을 잘하기 위해서 논의도 많이 하고 조금씩 불편할 부분을 개선하고 실험하다 보니 원격 근무를 점점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속한 개발 조직은 15~20명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하루에 팀의 10~30% 정도만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원격 근무의 핵심은 비동기로 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원격 근무를 하면 단순히 사무실에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팀원들을 모아두는 것은 동기 방식으로 일하기 위함인데 나도 필요할 때 옆 사람한테 말 걸고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동기 방식은 요청하는 사람(대부분은 관리자?)의 관점에서 편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참 집중해서 코딩하고 있는데 PM이 날 찾아온다거나 어떤 회의 중에 나보고 들어오라고 하면 내가 뭘 하고 있든 간에 멈추어야 한다. 내 경험상 이런 인터럽트 때문에 생기는 실무자들의 비효율을 고민하는 조직은 많지 않았다.

원격 근무로 일하면 자연스럽게 비동기가 된다. 일단 바로 부르고 싶어도 자리에 없으니까 부를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회의할 때도 보통 먼저 오늘 사무실에 나왔는지를 물어보는 메시지가 오면서 내가 가능한 시간을 물어보고 회의시간을 잡아서 진행하게 된다. 보통 회의는 그렇게 잡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빈도수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일이 많을 때는 원격근무를 많이 하게 되었다. 정량적으로 검증은 못 해봤지만 원격으로 일할 때는 실제 인터럽트도 없고 내가 그 인터럽트도 제어할 수 있어서 훨씬 개발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좀 여유가 있어서 사람들과 수다도 떨 수 있을 때 사무실을 나가게 되었다.

원격 근무를 하면 비동기 방식이 강제되지만, 원격 근무를 더 잘하려면 공격적으로 비동기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비동기로 일한다는 것은 꽤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보통은 Slack, GitHub, Jira 등을 사용할 텐데 비동기 방식으로 일하면 이러한 도구들이 완전히 업무의 중심이 되어서 모든 논의, 진행 상황, 결과가 다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같은 시간에 다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일하고 있어도 채팅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Slack으로 논의하고 GitHub이나 Jira에 기록으로 남겨서 나중에라도 확인하고 따라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기록은 나중에 합류한 팀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문서화인데 비동기로 일하면서 이런 부분을 신경 쓰면 자연스럽게 문서화가 된다. 조직 차원에서 이런 기록은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원격보다 비동기를 강조한 것은 업무 형태 자체를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 한 명 빼고 모두 사무실에 나왔다고 하더라도 비동기로 일해야 한다. 채팅으로 얘기하고 기록을 남기거나 사무실에서 회의하고 논의한 얘기는 다시 회의록으로 만들어서 공유해서 팀에서 진행 상황을 놓치는 사람이 없게 해야 한다. 아직 사무실에서 출근하는 게 보통 더 익숙하므로 이런 부분은 팀원 전체가 계속 신경 쓰고 노력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부분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당연한 부분이다. 원격 근무를 하지 않아도 휴가를 가거나 사무실에 있어도 모든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므로 당연히 기록을 남기고 모두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사무실에 모두 있으면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다.

그래서 원격 근무를 하려면 전사적으로 비동기로 일해야 한다. 이전에 있던 곳에서는 개발조직이 다른 부서와 밀접하게 닿아서 하지 않는 일이 많아서 개발조직이 원격 근무를 더 잘 할 수 있었다. 개발, 디자인, 기획, QA, 운영 같은 부분은 비동기로 일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부서들은 내가 업무형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뭐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 부서는 성격상 모여서 일하더라도 팀 간의 협업은 최소한 비동기가 되어야 회사가 원격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스포카처럼 점진적인 원격 근무 도입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번 원격 근무 같은 규칙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원격 근무를 하려면 협업 형태가 완전히 비동기가 되어야 하는데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번 같은 규칙은 오히려 휴가나 일찍 퇴근하는 날처럼 비쳐서 일하는 방식은 안 바뀌고 좀 쉬는 날 정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관리의 문제

난 관리자는 아니지만 연차가 오르다 보니 관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끌게 되었다. 원격 근무를 떠나서 국내에서 관리 대한 고민이나 경험은 그리 성숙하지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기서 관리는 팀원 관리, 프로젝트 관리, 일정 관리 등을 모두 포함하는데 막상 관심을 가지니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서 관리만 전문적으로 하는 스페셜리스트가 왜 이렇게 없는가 싶을 정도다. 까놓고 말하면 일정 정해놓고 압박하고 비난하기 바빴지 체계적인 관리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업계에 그 경험이 쌓이게 하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고 본다.

사무실에 있을 때 관리자들이 어떤 관리하는지 모르지만, 원격 근무는 얼굴을 보지 않고 일하다 보니 관리가 더 중요하다. 단적으로 특정 팀원이 몸이 안 좋거나 집안일로 고민이 많은 경우 사무실에 있으면 눈치챌 수 있지만, 원격으로는 본인이 얘기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 외 업무적으로나 회사 내 인간관계가 힘든 경우도 자연히 알아낼 방법이 없으므로(사무실에 있다고 자연히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해외의 원격 근무 경험 글을 보면 정기적으로 팀원끼리 잡담하는 시간을 만들거나 업무와 상관없이 개인의 상황만 물어보고 챙겨주는 관리자들이 존재한다. 사실 업무 외의 부분만 챙겨주는 관리자는 원격 근무가 아니더라도 외국 회사들에는 꽤 있다. 이런 경험을 못 해서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원격 근무를 하면 이런 시도가 필요하다

관리는 평가로도 이어질 수 있는데 원격으로 일하면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이 실제로 한 일, 기록에 남은 일이 대부분이라서 훨씬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하게 사무실에 오래 앉아있거나 눈치 보지 않고 일을 더 잘하는 것에 모두 집중할 수 있다. 물론 이건 개념상으로만 그런거고 실제로 진행되면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 팀 내에서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평가에 대해서도 내 경험이 짧아서 어렴풋이 생각한 정도만 정리한 것이긴 하다.

신규 입사자, 신입에 대한 지원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인지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른지 모르지만, 아직 국내에서 원격 근무로 일하는 방식이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팀원을 뽑을 때도 원격 근무에 맞는지를 뽑아야 한다. 이건 누가 좋고 나쁘냐가 아니라 팀에 맞냐 안 맞냐에 대한 얘기이다. 원격 근무를 하려면 시간에 대해 관리를 해주거나 감시해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하고 비동기로 일하는 부분에 어느 정도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면접 때 이런 부분도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해결 안 된 부분은 새로 들어온 사람이나 주니어에 대한 지원이다. 그나마 경력자는 잘 작성해 놓은 문서를 제공하고 사무실에 갔을 때 몇 번 설명해 주면 되지만 신입 지원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보통 사무실에 출퇴근할 때 신입이 입사하면 정기적으로 일부 시간을 빼서 같이 페어 코딩을 하거나 옆에서 지속해서 가르쳐 주면 된다. 하지만 원격 근무라고 생각하면 신입이 새로 회사에 왔는데 정작 자기랑 일할 사람은 아무도 사무실에 없다거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무실에서도 편하게 물어보라고 해도 신입 입장에서는 당연히 하나도 안 편할 텐데 얼굴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입을 어느 정도 지도를 해주면서 빨리 업무 능력이 향상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원격 근무로 이 부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고민인 부분이다.

우리가 했던 시도

원격 근무를 계속하면서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논의하면서 계속 개선해 나갔다. 원격 근무 경험도 많지 않고 팀에 맞는 방법도 찾아야 하므로 지속해서 팀에서 더 좋은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에 있던 조직은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자고 얘기 나오면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편이었고 진행을 했다가도 비효율적이면 바로 이슈 제기를 하는 편이라서 더 편하게 의견을 말하고 실험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을 한 번에 찾는 것보다는 좋았던 방법이 팀 상황에 따라 안 좋아질 수도 있으므로 지속해서 개선할 수 있는 조직이 훨씬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상태에 대한 공유

출퇴근과 원격 근무가 섞여 있다 보니 처음에는 원격 근무를 하는 사람만 Slack과 캘린더로 공유하고 사무실로 나오는 사람은 그냥 나왔다.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서 다른 사람이 언제 일하고 있는지 몰라서 생기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일을 시작하면 채팅으로 시작했음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퇴근할 때도 알리고 퇴근했다. 이는 사무실에 나오는 사람도 사무실에 나옴을 알리고 퇴근할 때는 말하고 퇴근해서 사무실에 나오냐 안 나오냐의 차이를 없앴다.

이 공유는 중간에 자리를 비울 때도 마찬가지로 잠시 자리 비움을 알리고 돌아와서 업무 재개를 하면 다시 알렸다. 추가로 집중해서 개발하고 싶을 때도 2~3시간은 채팅 안 볼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해서 서로 일하기가 편해졌다.

정기적인 만남의 자리

원격 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사무실에 안 나오는 일이 많다 보니 서로 얼굴을 보기 어려워졌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일주일에 한 번도 못 보는 일도 생기곤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다 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때 그냥 수다를 떨기도 하고 전체가 다 같이 논의할 얘기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모임은 필수는 아니었다.

Slack의 스탠드업 미팅

스탠드업 미팅을 좋아하진 않는데 다른 사람이 진행하는 업무를 어느 정도 공유하기 위해서 슬랙에서 스탠드업 미팅을 진행했다. 스탠드업 미팅은 보통 서서 아주 짧게 하라지만 길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같은 시간에 모이지 않는 우리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슬랙봇 서비스가 많은데 우리는 standup-slack-bot를 사용해서 스탠드업 미팅을 진행했다.

이런 봇은 대부분 비슷한데 아침에 bot한테 "어제 한 일", "오늘 할 일", "일을 방해하는 요소", "목표"를 적으면 봇이 이 내용을 모아서 정해진 시간에 전체가 볼 수 있게 공유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보통 오늘 할 작업을 대부분 정리하므로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그걸 bot에 적어놓으면 몇 분 걸리지 않으면서 전체가 다른 사람이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로 고생 중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는 팀이 커짐에 따라 더 작은 단위로 나누거나 팀 성격에 따라서는 진행 안 하기도 했다.

컨퍼런스 콜

사무실에도 출근할 수 있다 보니 채팅으로 논의하다가 주제가 커지거나 하면 항상 다음 회의 일정을 잡아서 논의하곤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회의가 많아지기도 했고 바로 진행해도 될 일이 회의 잡아서 진행될 때까지 미뤄지는 느낌도 있어서 간단한 일부터 시작해서 논의가 시작되면 바로 컨퍼런스 콜로 진행해서 끝내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컨퍼런스 콜이 더 자연스러워지니 대부분의 회의도 항상 컨퍼런스 콜을 연결해서 사무실에 안 나온 사람도 회의 내용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이전까지는 난 항상 카페에서 원격 근무를 했는데 컨퍼런스 콜을 하면서 처음으로 원격을 해도 카페가 아닌 업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카페는 너무 시끄러워서 마이크가 있어도 말할 수가 없었다.

에필로그

원격 근무를 얘기하면 보통 걱정을 더 많이 하는데 문제는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원격 근무에 대한 걱정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내 대부분의 대답은 "그럼 사무실에 있을 때는 어떻게 했나요?"가 되는데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프로젝트 일정이 망가졌을 때 아무도 사무실에 모여있는 게 문제인가는 생각하지 않는데 원격 근무에 대한 걱정은 대부분 원격 근무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난 원격 근무를 지지하게 되었지만, 원격 근무가 모든 회사나 업무에 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더 좋은 인력을 데려오려고(거리나 위치 때문에 입사를 안 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원격 근무를 도입하는 때도 많은데 국내에서도 이런 추세가 많이 생겨서 경험이 더 많이 누적되기를 바랄 뿐이다.

2018/03/05 04:05 2018/03/05 04:05